[영화풀버전- 걷기왕] 달리기를 강요하는 사회…우리에겐 걸을 자유가 있다 (리뷰)
[영화풀버전- 걷기왕] 달리기를 강요하는 사회…우리에겐 걸을 자유가 있다 (리뷰)
  • 승인 2016.10.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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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왕’

감독: 백승화

출연: 심은경(만복 역), 박주희(수지 역), 김새벽(담임선생님 역), 허정도(육상부 코치 역)

제공/배급: CGV아트하우스

제작: 인디스토리

개봉: 10월 20일

크랭크인: 2016년 3월 19일

크랭크업: 2016년 4월 25일

장르: 드라마

관람등급: 12세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2분

   
 

■ 줄거리

그녀 나이 4살에 발견된 선천적 멀미증후군으로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을 탈 수 없는 만복(심은경 분)은 오직 두 다리만으로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까지 걸어 다니는 씩씩한 여고생. 무조건 빨리, 무조건 열심히, 꿈과 열정을 강요당하는 현실이지만 뭐든 적당히 하며 살고 싶은 그녀의 삶에, 어느 날 뜻밖의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다. 걷는 것 하나는 자신 있던 만복의 놀라운 통학 시간에 감탄한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그녀에게 딱 맞는 운동 ‘경보’를 시작하게 된 것. 공부는 싫고, 왠지 운동은 쉬울 것 같아 시작했는데 뛰지도 걷지도 못한다니. 과연 세상 귀찮은 천하태평 만복은 ‘경보’를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 메인 예고편

■ 감독&주연배우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요구하는 ‘패기’, ‘열정’, ‘간절함’과 같은 이야기가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꿈이 없어도 괜찮고,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백승화 감독은 장편 데뷔작 ‘반드시 크게 들을 것’으로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후지필름 이터나상, 제35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연출력을 입증한 바 있다. 백승화 감독은 ‘걷기왕’을 통해 누구보다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10대의 섬세한 심리묘사는 물론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 조금 느린 속도여도 괜찮다는 위로를 담았다.

   
 

“‘걷기왕’을 촬영하면서 굉장히 많은 힐링이 됐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걸 찾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 보면서 울 뻔했다. 나를 위로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은경은 ‘걷기왕’을 통해 선천적 멀미증후군이라는 이전에 없던 독특한 캐릭터부터 친구와 함께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하는 평범한 10대 여고생, 그리고 ‘경보 선수’로 거듭나기 위해 있는 힘껏 트랙을 누비는 육상 꿈나무까지 다양한 모습을 특유의 유쾌하고 능청스러운 연기로 풀어낸다.

■ 기자의 눈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뛰고 있다. 결승선이 어디인지,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옆 사람보다 먼저 가기 위해 무작정 달린다. 우리에겐 달리지 않을 자유가 있다.

영화 ‘걷기왕’의 만복은 선천적 멀미증후군으로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을 탈 수 없다. 학교까지 왕복 4시간을 걸어 다니는 씩씩한 여고생 만복에게 담임선생님은 “너의 꿈은 뭐니?”라고 묻는다. 담임선생님은 “꿈과 열정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여고생 만복에게 경보를 추천한다.

   
 

주변사람들은 매사가 적당히인 만복에게 “꿈이 없다”, “열정이 없다”고 질타한다. 심지어 옆자리 친구는 “바보 냄새가 난다”며 그녀를 무시한다.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경보를 통해 만복은 처음으로 ‘꿈과 열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만복이 증후군을 극복하거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있지 않다. 적당히 걸으며 살아가던 만복은 어느새 무리를 하게 되고 웃음을 잃어간다. 발가락에는 피고름이 나오지만 묵묵히 참아낸다. 모든 것은 ‘꿈과 열정’이라는 달콤한 독 때문이다.

   
 

영화 초반 만복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그녀와 충돌하는 육상부 선배 수지는 촉망받는 마라톤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경보로 전향한 인물이다. 그녀는 매번 통증을 참아가며 지독하게 훈련에 임한다.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도 실은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 악착같이 버틸 뿐이다.

영화는 열정과 꿈이 경쟁과 연결되는 현 사회를 향한 경종의 메시지를 경쾌하며 영리하게 풀어간다. 어느새 우리에게 꿈은 직업과 이음동의어가 됐고 열정은 경쟁에서 이기는 수단이 됐다. 노력, 열정, 인내와 같은 단어들이 꿈을 퇴색시키고 고통을 정당화 한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것이 아닌 꿈을 찾아주고 열정을 설파하는 자신의 모습에 쾌감을 느끼는 영화 속 담임선생님의 모습은 참으로 괴기스럽다. 영화 밖 우리들도 어느새 담임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열정을 강요하며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고 뿌듯해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청춘이 굳이 아플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꿈과 여유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일까. ‘걷기왕’은 달리기에 지친 모두에게 걷기라는 위로를 전한다.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CGV 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