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더 킹' 정우성, 타협을 거부하는 소신의 배우
[SS인터뷰] '더 킹' 정우성, 타협을 거부하는 소신의 배우
  • 승인 2017.01.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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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우성과의 인터뷰는 꽤나 진지한 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 사태와 영화 속 설정이 꽤나 닮아있는 탓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많이 해야 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정우성은 자신의 소신을 밝힐 줄 아는 진지하고 묵직한 매력의 소유자임이 틀림 없었다. 그간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 탓에 그다지 조명되지 못했던 정우성의 내면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정우성을 만났다. 정우성은 이날 개봉한 영화 ‘더 킹’에서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 실세 한강식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더 킹’은 개봉 전부터 정우성x조인성x류준열x배성우의 만남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소름끼칠만큼 닮아있는 영화 속 설정 등으로 관심을 끌었던 만큼, 개봉 첫날부터 국내 박스오피스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흥행가도에 청신호를 켰다.

“VIP 시사회가 끝나고 주변 지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영화가 깔끔하냐. 모든 구성원들과 감독이 두루두루 잘 보이더라. 유쾌하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영화다’라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업됐죠.(웃음) 저 역시도 영화를 보고 나서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의식을 제시하는 영화니까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인데 감독님이 굉장히 ‘톤 앤 매너’를 잘 정해서 정말 한 편의 마당극을 보듯이 풍자와 해학이 담긴 영화로 만들어주셨더라고요. ‘블랙 코미디’의 성격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는 영화인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하지만 정우성은 영화의 흥행 청신호에 자기 자신을 위한 기대보다는 함께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더 킹’이 좋은 반응으로 시작하는 것 같아서 기뻐요.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를 통해 기대되는 반응은 ‘조인성은 연기의 천재다’ ‘배성우 매력의 끝은 어디인가’ ‘류준열의 가능성이 열렸다’ 정도? (웃음) 저에게 기대되는 반응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기대에 부응한 적이 있었나요? 저는 어떤 기대를 하기 보다는 영화 안에서 한강식의 역할이 기능해야 할 요소에 충실하고 싶었고, 그게 결국엔 영화의 밸런스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덕분에 동료들에게 지금 과한 찬사를 듣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 쏟아지는 호평을 ‘과한 찬사’라고 표현한 정우성의 말이 그저 겸손을 위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찰나, 정우성이 한 발 먼저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칭찬들이) 부끄러워요. 이제 다음 숙제는 또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칭찬을 받을 때면 다음 캐릭터가 늘 숙제로 다가오거든요. 지금 듣는 이야기들에 들떠서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다음에 또 다시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게 돼요.”

영화 속에서 대한민국 권력의 설계자인 ‘실세’ 검사 한강식을 연기하며 성공과 권력에 자아도취된 비릿한 권력의 단면을 보여준 정우성은 한강식 역을 연기했을 때의 재미를 묻는 질문에 “무너트리는 재미가 있었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무너트리는 재미가 있었던 역할인 것 같아요. 한강식을 무너트려야 겠다고 생각했고 재미있게 촬영했죠. 사실 한강식이 품위있는 척 하면서 사실은 온갖 추악한 행동은 다 하잖아요.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한강식이라는 캐릭터를 비아냥대면서 제가 그에게서 느낀 비릿하고 추악한 모습을 연기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특별히 신경쓴 부분은?) 한강식만의 포장이 필요했어요.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것도 있었지만 배우로서 목소리나 말투가 중요해서, 유연한 척 하는 말투 속에서 리듬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결국엔 자기 포장이잖아요. 위장이고. 속내를 감추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말을 더 유창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는 ‘더 킹’의 개봉과 맞물려 영화와 유사한 사태가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건만, 개봉을 확정 짓기 얼마 전부터 대한민국에 실제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 터지면서 ‘더 킹’은 관객들에게는 기대작이, 누군가에게는 위험작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더 킹’의 촬영 당시 검찰의 감시도 있었다는 보도까지 전해졌다.

“검찰의 감시는 모르겠어요. 사실 시국이 이렇게 흘러가서 우연한 타이밍을 맞은거지 시나리오를 받고 결정하고, 촬영할 때는 시국이 이렇지는 않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런 우연한 타이밍이 ‘더 킹’의 운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영화를 촬영할 때만 하더라고 용기가 필요했던 선택이었어요.”

   
 

정치와 권력의 이면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영화인만큼 많은 이들의 촉각이 곤두설 수 있는 작품임은 정우성도 충분히 예상했을 터. 그럼에도 정우성은 ‘더 킹’의 출연을 결정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는 않았다고 입을 열었다.

“선택은 조심스럽지 않았어요. ‘감독이 이런 문제의식을 세상에 던지려고 하는구나’하는 생각이었죠. 정치 검찰에 대한 문제는 어느 정권에서나 기사로 돌출이 됐었던 거고, 단지 바로 잡을 의지가 없었던 것 뿐이었으니까요. 지금에서야 이러한 일들이 문제화되고 문제시되지만 그간 이러한 문제를 이용하려고 하는 정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한 정치에 문제의식을 던질 수 있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했고, 제가 어느순간 선배가 되고 기성세대가 되고 있는 지금 제 나이에 제가 할 수 있는, 후배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의식에 대한 실천에 있어서도 저에게는 굉장히 바람직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더 킹’을 정치적인 색을 입혀 바라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우성은 “그게 문제다”라며 소신 발언을 전했다.

“상식적인 선 안에서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라봐지는 것이 문제에요. 상식과 정의가 있는 세상을 만드는게 정치인들이 해야할 몫이고, 그것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자꾸 정치적인 색으로 바라보는 것은 표현을 위축하고 왜곡하는 거죠. 학교에서 ‘타인에게 피해 끼치는 행동을 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정치적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저 공동체적 삶에서의 바른 태도를 이야기하는거지.”

의도치 않게 ‘더 킹’이 국내 정치상황과 연결되며 인터뷰 내내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우성의 인문학적 소양에 관심이 갔다.

“인문학적 소양이라기 보다는 끊임없는 관심이요. 표면적인 이해보다는 내면적인 해석 등에 대해서 더 신경을 쓰려고 하고, 생각을 단순하게 하려 하지 않고 자꾸 안을 들여다보고 제 스스로의 생각도 자꾸 의심해보려 해요. 모든게 다 관심에서 시작되는 거잖아요. 관계, 사회,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이어 정우성은 영화 속에서 한강식과 박태수가 선택했던 ‘사회와의 타협’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저는 제가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꾸 사회와의 타협을 하게 되는데, 타협은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거에요. 무엇을 위한 타협인지, 얼마나 정당한지, 깊게 생각해 봐야 해요. 쪽팔리잖아요.(웃음)”

   
 

이번 영화에서 권력을 쥐고 대한민국의 실세가 되어 보겠다는 야망으로 한강식을 만나게되는 박태수 역을 맡아 정우성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조인성은 앞선 인터뷰에서 정우성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표한 바 있다. 이러한 이야기에 정우성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후배 배우에 대한 칭찬으로 화답했다.

“사실은 (조)인성 씨가 데뷔를 준비하고 있을 때 부터 인성 씨를 봤었고, 당시에는 같은 소속사 소속이기도 했었어요. 제가 소속사를 떠나면서 멀어지게 됐는데, 저를 동경했던 후배에게 그동안 선배로서 내가 무엇을 했냐고 자문했을 때 저는 부끄러운 선배더라고요. 그래서 ‘더 킹’에서 인성 씨가 캐스팅이 됐다는 게 정말 중요한 요소였고, 같이 작품을 하면서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인성 씨가 그런 저를 바라보면서 자기 것으로 빨리 받아들이기도 하고 저를 더 선배스럽게 만들어주는 후배더라고요. 현장에서 만난 인성 씨는 정말 ‘멋진 조인성’이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뿌듯하기도 했고, 소중하고, 선배에게 자극을 주는 멋진 후배죠.”

‘더 킹’에서 정우성과 함께 호흡을 맞춘 후배 배우들은 한결같이 정우성을 ‘신인 같은 자세로 늘 열심히 준비하는 배우’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정우성은 ‘준비하는 자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방식이 바뀌어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같은 방식 안에서 분명히 신인 때 보다는 여유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열심히 하더라도 신인 때 보다는 피로감이 훨씬 덜 할 수 있는거에요. 그렇지만 모든 부분에 있어서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관습적 자세로 돌변하는 순간 나태해 질 수도 있는거고, 당연해 질 수도 있는거니까요. 늘 신선한 에너지로 나 자신을 긴장시켜서 깨어있게 해야 하는거고, 지난 역할을 못하면 못한대로, 잘하면 잘한대로 부담을 가지고 다음 캐릭터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첫 선을 보인 이후 ‘더 킹’에는 4명의 남자 배우들 만큼이나 주목을 받은 한 명의 여배우가 있었다. 바로 동료 검사 역할을 맡은 배우 김소진. 아쉽게도 이번 영화를 통해 인터뷰로 만나볼 순 없었지만, 정우성의 묵직한 칭찬으로 그녀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분들이 (김소진을 보고)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곽도원을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칫 잘못하면 후반부의 긴장감 때문에 놓치고 갈 수 있는 부분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 분께서 새로운 국면 전환에 있어서 굉장히 유연하게 자기 몫을 해 주셨거든요. 값진 여배우의 발견 같은 느낌이었죠.”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함께 나아가는 ‘더 킹’의 팀워크를 보자니 자연스럽게 남달리 유쾌했을 현장 분위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현장 분위기는 밝고 재미있었어요. 배꼽을 잡고 웃을 경우도 많았고. 전체적인 진지함 속에서의 유쾌함이 계속 나왔고, 촬영이 끝난 후에도 숙소에 돌아가서 잠들기 전에 다같이 모여 간단히 맥주 한 잔 하면서 오늘, 내일 촬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그냥 ‘더 킹’의 기류 안에서 같이 놀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죠. “

정우성은 ‘더 킹’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한 줄로 영화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꽤 오랜 시간 침묵으로 고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계몽 운동하듯이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치자’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대신 어떤 행동에 있어서 주인의식을 갖자 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 같아요. 투표 역시 주인이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을 뽑는거잖아요. 우리의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리할 수 있는 대리인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했으면 하는거죠.”

   
 

자신의 삶의 낙을 묻는 질문에 ‘오늘’이 삶의 낙이라고 답하는 정우성은 2017년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아직 올해의 마지막 목표는 정한 것이 없다”고 입을 열었다.

“그냥 지금 ‘더 킹’ 개봉 잘 하고, 촬영 중인 ‘강철비’ 촬영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가 신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어렸을 때 아무 것도 없이 세상에 뛰어나와서는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무엇인가를 얻고 이루어 갈 때 너무 신났거든요. 신난다는 건 좋은 에너지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신나는 기분을 많이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이런 신바람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시기로 빨리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나아가서 지금은 문제 의식을 다루는 영화들이 필요한 시대고 그만큼 그런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 조금 더 낭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시대로 가는 2017년이 됐으면 좋겠어요.”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NEW]